(6) 가상자산거래소 상장에 대한 제언
토큰 발행은 코드 몇 줄과 그럴듯한 수식어로 포장된 백서만 있으면 몇 분 내에 완료 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이다. 생성된 토큰 역시 그 상태로는 시장에서 어떠한 밸류도 인정받은 바 없으므로 교환가치는 거의 0에 수렴한다. 이러한 토큰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유통을 통해서다. 이러한 이유로 발행인들은 거의 무가치하다고 볼 수 있는 토큰에 가치를 부여해 줄 거래소 상장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일단 거래소에 상장이 되고 나면 발행인은 자신이 발행한 토큰을 높은 가격에 거래소에서 매도할 수 있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토큰 발행의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제 발행인으로서는 이미 상장으로 벌어들인 돈을 투입하여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시켜야 하는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되려, 프로젝트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다가 적절한 시점에 놓아버리고, 다시 새로운 토큰을 발행하여 이를 거래소에 상장하고 한 방에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거래소의 상장심사 권한에 대한 고민은 이러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거래소 입장에서 상장 토큰은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이므로, 어떠한 상품을 판매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거래소에 주어져야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그러나, 거의 무가치한 토큰에 거래소 상장이 부여하는 엄청난 가치(가격)는 결국 거래소 이용자들의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거래소의 상장심사 권한은 이용자 보호 목적을 위해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거래소는 이용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 상장심사를 수행하지만, 때로는 거래소의 이익과 이용자의 이익이 상충될 수 있고 이 경우 거래소로 하여금 이용자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장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1, 2위 거래소 쏠림이 심한 우리 가상자산 시장에서, 중소형 거래소들은 대형 거래소가 상장하지 않은 프로젝트들을 발굴하여 단 하루라도 먼저 상장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달리 유동성을 끌어올 방법도 없고 중개모델 외에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는 중소형 거래소가 대형 거래소와 경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취급하지 않는 상품을 취급하는 것뿐이다.
거래소가 갖는 또 하나의 딜레마는 자율규제 준수에 관한 것이다. 금감원과 DAXA, 원화마켓 거래소가 함께 만든 ’거래지원 모범사례’가 상장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으나,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보듯이 자율규제는 위반한 자가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자율규제를 위반하는 일도 성행하게 된다.
최근 가상자산 2단계 입법 관련하여 국회를 중심으로 거래소의 이해상충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특히, 상장 권한을 아예 공적 기구에 맡기는 방안과, 거래소의 상장 권한과 상장폐지 권한을 분리하는 방안 등이 주장되는데, 각각의 경우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책임 있게 고민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먼저, 상장 권한을 공적 기구가 행사하게 될 경우, 모든 거래소는 동일한 상품(토큰)만을 판매하게 된다. 그렇다면 거래소들로서는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수수료 인하와 같은 출혈 경쟁과 에어드랍 이벤트, API를 통한 봇 거래 서비스 등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마케팅 경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아무리 공적 기구가 심사하더라도 앞서 설명한 발행인의 역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특정 토큰이 2년 이상 상장이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공적 기구로서는 자신이 심사한 토큰이 상장폐지되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지극히 보수적으로 심사할 수밖에 없고, 종국적으로 시장은 활기를 잃고 이용자들은 해외 시장을 찾게 될 것이다.
상장 권한과 상장폐지 권한의 이원화 역시 부자연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상장과 상장폐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상장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상장하고, 지속적으로 유지 심사를 하다가, 상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것을 숙고 끝에 상장폐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상장기준이 거래소마다 다르다면 상장폐지 기준도 거래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장 권한과 상장폐지 권한을 일단 거래소에 귀속시킨 상태에서 거래소의 규범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안을 생각해 보자. 먼저, 발행인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행인이 국내 거래소에 상장시 실제로 보유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우리 거래소에 락업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상장 후 일정 기간동안 대주주의 지분 보유를 강제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는 발행인(법인)의 핵심 구성원의 인적사항, 국적지 및 소재지에 대한 어떠한 정확한 정보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가상자산 시장에서, 우리 거래소가 발행인에 대해 최소한의 강제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다만, 이 방안은 비협의상장의 경우와 발행인이 거부하는 경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거래소에 대하여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한 자율적인 상장정책을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되 내부 상장정책을 위반한 것에 대한 패널티가 부과되어야 하며, 감독당국은 불가피한 경우 거래소로 하여금 상장 폐지를 강제할 수 있는 2차적인 권한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해외 입법례에서도 예외없이 두고있는 조항으로 보여진다. 이와 더불어, 감독당국 주재 하에 거래소 간 ‘거래지원 심사요건’에 대한 세부 판단기준을 주기적, 지속적으로 조율함으로써 심사의 질적수준을 맞추어 가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가상자산 2차 입법 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쟁점들은 수없이 많을 것인데, 각 쟁점들은 모두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실적인 집행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학계 뿐 아니라 업계에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김효봉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미래금융전략센터)